[Abrife] 사랑하는 건축가 동료 여러분께.

Charles Holland, director at UK based firm FAT Architecture (see their public bathroom proposal for London) runs Fantastic Journal, an interesting blog on which he recently published the following open letter to us, the other architects:

Please stop entering design competitions. It’s sheer folly. Here’s why:

1. It’s massively wasteful of your time and resources. Can you think of another comparable industry, or, more pertinently, profession, that spends so much time and money on bidding for work? Do doctors undertake a number of unpaid, speculative operations in order to convince people that they really need a hip replacement? No.

2. It gives away your main asset – your ideas – for free. After that, the rest is routine.

3. You are highly unlikely to win. This is just a fact. Some are better at them than others but no one wins them all and most lose often.

4. Even if you do win, it’s still unlikely that the building will be built. Most competitions are speculative, not in the sense that the client is looking for experimental architecture, but in the sense that there is little or no funding in place and they have not informed you of all the impediments still in the way of the project.

5. Therefore, there is often only one thing more disappointing than losing a competition and that’s winning one (in the long run).

6. They are a pretty terrible way of procuring a building. Imagine a system where you want something but you’re not sure exactly what it is. So you make a list of things you think you want and invite everyone in the world to send you their ideas for what it looks like. You have no other interaction with them, communicate – if at all – by email and, in the end, hope for the best and pick the one you fancy. This is the architectural competition process. It’s similar to internet dating, but less fun.

7. Competitions momentarily flatter you into thinking that you are designing, say,Oslo Opera House or a New Town outside Madrid but, in reality, you’re not. Until you get the commission it’s just pretend.

8. No one else in the world understands why you’re doing it. They just get used to you not coming out or refusing to take a holiday or forgetting to wash for five days. But they still think you’re mad.

9. You could do without the stress. All that time. All that effort. The all-nighters and the break-neck journey to the printers to get the boards made up! The intern dispatched to Inverness to hand them in because you’ve missed the courier’s deadline! The anxious wait for the results that sometimes never come! Honestly, you could do without it.

10. Remember: it’s not the failure that will kill you. It’s the hope.

So, if you’re thinking of entering a competition, don’t! Take your office down the pub instead. It will be more fun and cost a lot less. You might even meet someone down there who wants to give you a job. Remember: if you stop, I can too.

 

영국의 회사 FAT Architecture를 운영하고 있는 Charles Holland는 블로그 Fantastic Journal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다른 건축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개 서한을 보냈다. 그는 이 서한에서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으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는 시간과 자원에 대한 커다란 낭비이기 때문이다. 다른 전문적 직업의 경우 일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일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의사의 경우 수술이 필요하다고 믿게 하기 위하여 지불받지 않고 일을 하는가?

2. 당신의 주된 자산인 생각을 남에게, 그 것도 공짜로 주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나머지 과정은 일반적인 행위이다.

3. 승산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는 다른 사람보다 낳다. 그러나 모두가 당선 되는 경우는 없다. 당선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 당선된다 하더라도 건물이 지어질 지는 확실치 않다.

5. 따라서 공모전에서 당선되지 못한 것 보다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종종 있다.

6. 건물을 설계한다는 과정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데 그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대부분의 경우이다. 이에 따라 본인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열거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며 이들의 생각을 얻는다. 상호간의 대화는 없다. 단지 선택되어지기를 바라는 꿈만을 가지는 것이다. 즉, 건축 공모전의 과정은 인터넷 데이트와 유사하며, 물론 재미 또한 없다.

7. 공모전은 순간적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프로젝트를 맡기 전까지 그렇다 할 수 없다.

8. 세상 어디에도 당신이 하는 일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열심히 일을 아무리 하여도, 상대는 당신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기 마련이다.

9. 당신은 스트레스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다. 항시. 기나긴 기다림의 대부분은 공허한 결과를 낳는다.

10. 명심하라. 실패가 당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공모전에 참가할 생각을 접어라. 술집으로 가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당신에게 일거리를 줄 사람을 찾는 것이 더욱 현명할 것이다.

쉴 권리도 인권이다. -박노자

 성장 제일주의의 유산이겠지만, 박정희에 비판적인 한국 정치인까지도 박정희만큼이나 외화로 표시되는 “우리들의 성장 통계”를 참 좋아한다. 1990년대에 “국민소득 1만달러”는 주류의 자랑거리였으며, 2000년대의 자유주의 정권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간다고 자화자찬했다. 현재 대통령이 “머지않아 3만달러, 4만달러 시대가 온다”는 것을 확약하는 걸 보니, 자유주의 온건 우파든 극우파든 외국돈으로 표시된 숫자에 대한 사랑은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영업 하거나 중소기업에 다니는 다수 한국인들의 주머니 사정에 그다지 큰 직접적 영향을 주지도 않는 소수 재벌들의 수출 성과에 좌우되는 외화 표시 1인당 국민소득의 통계는 과연 한국 사회의 진일보를 제대로 반영하는가? 필자는, 외형적 성장보다는 사회 상식의 변화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진보의 가장 확실한 표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의미에서도 한국 사회가 지난 수십년 동안 커다란 긍정적 변화를 보였다는 것도 필자가 스스로 목도한 분명한 사실이다.

 필자가 한국 사회를 최초로 체험한 19년 전에는, 절대다수의 한국인에게는 동성애는 “변태”였으며, 군에서 살인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감옥에 가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광신도”나 “또라이”에 불과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동성결혼이 가능해진 것도 아니고 무기를 들지 않을 사람들을 위한 대체 복무 제도가 신설된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시민사회에서는 성소수자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상식적으로 토론의 대상이 돼야 될 “의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즉, 국가는 구각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사회의 상식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을 성희롱하는 저질 교수들을, 그때나 지금이나 “상아탑”이어야 할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1993~1998년간 서울대 우 조교의 법정 투쟁 등 성희롱 관련 사건들을 경험한 오늘날 사회에서 성희롱이 범죄라는 상식이라도 점차 굳어져 가고 있다. 인권 상식이 발전돼 가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진정한 의미의 진보이자 희망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 인권 상식은 충분한가? 전혀 그렇지 않으며,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 인권이 부단히 유린된다는 것은 필자의 생각이다. 요즘 들어 학교 체벌과 같은 유형의 폭력은 그나마 비판적 시선을 받기에 이르렀지만, 다수가 일상적으로 당하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가장 무서운 무형의 폭력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이다. 이를 “우리 경제 사정으로서는 불가피하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렇다면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폴란드나 헝가리, 멕시코에서마저도 노동자들이 연간 2316시간이나 일하는 한국 노동자보다 400~500시간이나 덜 일한다는 것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보수진영에서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고 엄살을 떨지만, 국제 통계를 보면 한국 근로자의 소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63%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이 다수를 점하는 한국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을 견디면서도 보수다운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보수진영에서 “강성 노조” 타령을 일삼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이 이렇게 당하면서 살게 된 이유는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잔업시간 단축을 요구할 만한 노조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더 정확할 것이다. 저들이 하루마다 파김치가 되는 몸을 쉬게 할 시간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최악의 인권 침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억울한 일이다.

 보수진영은 유독 북한을 공격할 때에 인권을 들먹이지만, 평일에 자녀와의 대화라도 나눌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한국 노동자에게는 인권이 있는가? 초(超)인간적 희생을 요구하는 장시간 노동이 바로 구타나 폭언만큼의 인권 유린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돼야 좀더 나은 사회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관리

생각 관리

 당신이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당신이 원하는 강력한 생각에 초점을 맞출 경우 파워가 더욱 커진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약한 생각들보다는

 당신이 원하는 막강한 생각들에 집중하라.

 그러면 직장과 인생에서 훨씬 더 보람 있는 시간을 가질 것이며,

 당신의 사고와 현실을 훨씬 더 쉽게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

– 메리 J.로어의《생각 관리》중에서 –

 * 생각이 행동을 결정합니다.

 행동 이전에 방향을 결정합니다.

 약한 생각을 하면 약한 방향으로,

 막강한 생각을 하면 막강한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생각도 관리가 필요합니다.

 생각 관리가 곧 자신의 인격 관리이자 인생 관리이기도 합니다.

건물 설계와 시공의 7가지 죄악

건물 설계와 시공의 7가지 죄악

Posted at 2010/08/31 06:37// Posted in 공간환경

지속가능한 건물은 그 사회가 환경을 해지지 않고 제품을 생산하고 사용하고 고치고 폐기할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한다. 지속가능한 건물은 어떠한 기후에서도 가능하다. 전 세계에는 많은 예의 지속가능한 건물들이 있으나 건축가와 엔지니어, 그리고 시공자 및 건물주 등 모든 이들에게 외면당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지속가능한 건물 기술은 생태의 다양성과 내구성, 지역생산 재료의 사용, 커뮤니티에 의한 건축, 에너지와 재료의 효율성, 재활용, 안전하고 건강하고 즐거운 공간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며,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 관계를 좋게 할 수 있다. 재료는 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영향만을 줄 수 있으며, 사용 후 재활용이나 자연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오늘날의 일반적 건물이 아니다. 오늘날 건물은 전체 에너지와 자원의 1/3을 소비하는 환경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근본적 원인은 개발에 따른 경제 원리에 있다. 이들은 환경적 죄악을 짓고 있으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잘 짓는 것 보다 크게 짓기를 원한다 개발의 기본적 요구로는 면적 당 적은 비용을 추구한다. 치장에는 많은 비용을 지불하여도 기본적 구조는 가능한 한 경제적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높은 냉난방비와 수리비를 요구하게 된다. 즉, 작고 고품질의 건물을 추구하지 않는 경향의 문제이다.

2. 대지의 남용 적절하지 못한 대지의 변형은 홍수, 습기의 문제와 인근 하천등에 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지의 벌목과 이에 따른 수 년간의 나대지로 변형됨으로 환경적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3. 에너지 낭비 자연형 냉난방 기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무에서의 활용이 되고 있지 않다. 기계와 화석 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자연 냉난방과 채광은 시공비의 절감과 연간 에너지 비용을 60 – 90% 절감하며, 거주자의 안락과 생산성을 향상 시킬 수 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시공비 절감을 위하여 유지 관리 비 등을 경시한다.

4. 실내 공기의 오염 실내 공기의 오염 문제는 건물 외부의 공기 오염보다 심각할 수 있다. 실내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재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비용 문제로 사용이 되지 않고 있다. 실내 공기 오염은 난방과 조리에 따른 것이다.

5. 습기에 따른 문제의 저평가 많은 건물들이 습기에 의하여 손상이 되고 있다. 특히 적절치 못한 지붕의 경사, 배수구, 처마의 미설치, 잘못된 디테일 등에 따른 건물에 대한 습기 침투가 문제가 되고 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막지 못하고나 잘못된 배수에 의한 지하 공간의 습기 문제, 배관의 누수 등은 건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6. 저급 재료의 사용과 비숙련 작업 경제성의 추구는 부실시공 및 저급 재료의 사용의 결과를 낳고 있다. 비숙련공에 의하여 빠른 시공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7. 과도한 폐기물의 양산 건설폐기물은 쓰레기 매입의 중요 원인 제공자이다. 이는 갈수록 비싸지고 환경 오염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설계 단계에서 재활용에 대한 고려를 하고 있으나, 건설 산업은 거의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이는 재료의 표준화를 통하여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턴키 계약’에 잃어버린 상상력

건축가-건설회사의 관계 문제

‘턴키 계약’에 잃어버린 상상력

‘턴키’(turn-key)가 사라져야 상상력이 산다!’

건축의 작가적 상상력을 회복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소장 건축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대목이다. 턴키는 직역하면, 키(열쇠)를 꽂은 뒤 돌려 차나 설비를 가동시킨다는 뜻이다. 재원조달이나 설계부터 완공·입주까지 건축 전 과정을 시공사가 알아서 해주는 일괄입찰 방식을 가리킨다. 1970년대 이래 관공서와 기업이 주문한 대형 건축 프로젝트나 기술집약적인 공사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건축가들이 턴키 방식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건축 디자인의 창의성을 보장하지 않고, 자신들을 하청업자화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턴키는 차를 산 뒤 열쇠를 받아 꽂고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격조건이 맞는 제안서를 내어 선택된 시공사가 공사를 끝내면 건물을 인수해서 쓰기만 하면 된다. 빠른 공기 안에 효율적으로 건축물을 짓는 것이 목적이므로 계약서상의 정해진 공기와 공정의 준수, 이윤 확보 등 건설회사의 이해관계가 우선이다. 디자인 부분은 참고요소에 불과할 뿐이고 저작권 행사도 제약을 받는다. 일부 관공서들은 설계작을 미리 현상공모한 뒤 다시 턴키 계약을 한 건설회사에 아이디어를 넘기는 변칙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명백히 건축가 유걸씨의 공모 당선 작품인 서울시청 신청사의 한옥 처마 모양 디자인이 시공사인 삼성건설 쪽 계열 삼우건축의 저작권으로 넘어가게 된 것도 이런 턴키 계약 방식이 변질되면서 빚어진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일부 건축인들은 턴키의 보완책으로 네덜란드처럼 국가건축가제도를 도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의 공공건축 프로젝트의 경우 국가건축가로 지정한 명망 있는 건축가 집단에 맡겨 그들이 설계자를 선정하고, 완공 때까지 건축물의 디자인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뼈대다. 하지만 디자인의 디테일보다는 공사 기간의 단축과 공사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는 관공서와 건축계의 풍토에서 이런 대안들이 얼마나 효용성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건축비평가인 이종건 경기대 교수는 “턴키는 건축 공정의 주도권을 건설회사가 쥐고 디자인도 수시로 고치기 때문에 설계자는 디자인 용역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며 “빠른 시간 내 효율적 공사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결과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공무원들과 건설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도 턴키 계약이 득세하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펌)

그냥 떠돌다가, 본글.

급. 관심이 생기는. 턴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