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본 일이다.
늙은 경력직 하나가 14층 카드리더기에 떨리는 손으로 사원증을 찍고 있었다.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카드리더기의 불을 쳐다본다.
카드리더기는 잠시 후 초록불을 켜주었다.
그는 기쁜 얼굴로 사원증을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 보며 엘레베이터를 타더니, 또 1층 보안팀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사원증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칼퇴근입니까?” 하고 묻는다.
보안팀 직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다보더니, “어떻게 벌써 나가는거야?”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러면 팀장한테 빌어서 나간다는 말이냐?”
“어느 팀장이 그렇게 칼퇴를 시켜줍니까? 시켜주면 인사 평가는 어떻게 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늙은 경력직은 손을 내밀었다.
보안팀 직원은 웃으면서 ‘”좋소”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보안팀 직원이 쫓아오진 않은가 살펴보는 것이다.
아무도 없자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양재역 3번 출구로 찾아 들어가더니,
출구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칼퇴근을 시켜줍디까?”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 도망가려고 했다.
“염려마십시오. 야근하지않소.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
그가 말했다.
“이것은 몰래 칼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이트온 온라인 상태로 해두고 가는것도 아닙니다.
나는 평일과 주말에도 야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여섯번을 해서 겨우 이 귀한 칼퇴근을 얻은 것입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해서 칼퇴를 해야한단말이오?”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냥 칼퇴가 해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