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815.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해천

 

…그들은 내가 지닌 공간의 논리가 거주자들의 신체와 정신과 맺고 있는 관계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내놓는 해결안 대부분은 그들 자신의 무능을 증명할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p.66

…나는 군사적 시서의 진두지휘 하래, 그들에 대한 임상 실험이 이뤄진 핵심 장소였다….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는 감각의 생산양식을 구축해 거주자들이 특정한 시각성의 논리를 체화하도록 독려했고, 일상성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독특한 구별짓기의 인지적 알고리즘을 내면화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들 내면의 윤곽을 주조하는 거푸집이었던 것이다….p.67

…나는 거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투시도적 프레임을 장착했고, 그 프레임에 포착된 사물들에게 기호로서의 삶을 부여했다. 나는 거주자의 감각을 재조직화 했던 것이다…p.79

…가라다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고하면서 인용했던 데이비드 리스먼의 ‘타인지향형’이라는 주체 유형은 분석을 위한 유용한 개념적 틀을 제공해준다. 리스먼은 사회심리적 관점에서 미국인의 성격 구조를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타인지향형으로 구분한 뒤 전후 미국사회가 도시화의 흐름을 타고 빠르게 내부지향형에서 타인지향형으로 이동했다고 지적했다…..상징적 권위, 종교적규범, 전통적 가치에 의지하는 전통지향형과는 달리, 내부지향형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나름의 가치규범을 만들어내고 자율성을 갖춘 자아의 형식을 구성하려고 시도한다. 반면 타인 지향형은 이 두 유형과는 매우 다르다. 일단 그들은 전통이나 내면의 가치 따위에는 무관심하다. 오히려 자신의 상상속에 자리 잡은 “말과 이미지의 레이더 스크린”에 의지해 타인의 모습이나 행위를 탐지하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을 세공한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그들에겐 생의 무한한 에너지 공급원이다. 그들의 뒤꽁무니에는 언제나 막연한 심리적 불안감이 매달려 있긴 하지만 어쩔수 없다……p.89

…..나는 도시규모의 사회를 직접 조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비인간적-행위자로 환골탈태했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 도 없었던 질문들을 되뇌기 시작했다. 힘의 관계가 역전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내가 굳이 설계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비록 내 몸은 창백하고 보잘 것 없는 콘크리트 였지만, 내 야심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위도치 않게 나의 꿈, 나의 세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p.97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 결국 이 열등생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고생해온 셈이다…..그러다 보면 천재는 간 곳이 없고, 비굴하고 피곤하고 오만한 낙오자가 남는다. 그는 출세할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p.113

….자신 세대 역시 ‘8학군’의 문화적 테크놀로지로 잘 조현된 우리의 자제들과 이제 곧 대결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들과 이인삼각의 편을 짜서 다른 세대의 아버지와 아들과 드잡이를 벌이는 세대론적 게임의 투전판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p.133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버지가 직장에서 쫒겨나야 자신이 취업살 수 있는 제로섬게임의 운명이며, “자산이 아닌 소득을 통해 주택을 소유하는 일이 보통사람에게 무망해진” 자산 불패의 현실 원리이다….자칫 경쟁의 대열에서 한눈이라도 팔면 곧바로 알바와 김밥의 천국으로 미끄러지기 일쑤이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한다고 해도 혼자 힘으로는 방 한 칸 얻기 힘들다…p.137

….앞서 살펴보았듯이 나는 1997년 이후, 뒤늦게 한 줌의 도덕만 포기할 수 있다면 어렵지 않게 안락한 삶의 표면을 유영하면서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정체모를 서글픔을 몰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배금의 물질주의로 정신을 말끔히 세척한 뒤 경제적 여유가 가져다준 사유의 소파 위에 몸을 깊게 파묻기로 작정했다. 우리가 건설한 세계의 또 다른 잠재서을 염탐하기 위해서 였다…..p.140

…..인간 모두가 평등하다느니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느니 하는 헛소리는 집어치우기 바란다. 그것들은 팩트가 아니라 가치일 뿐이다. 우리가 언제 그런 가치를 사회적 공리로 추구해야 한다고 합의한 적이 있었는가? 당신등은 정말로 우리가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동등한 능력의 소유자로 믿는 것인가? 사실 별 생각없이 그저 선진국 헌법의 몇몇 구절을 배끼는데 급급했을 뿐이지 않는가? 그리고 설령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당면한 비가역적인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창조해야만 한다면, 그럴 만한 역량을 지닌 파워엘리트 세력이 부르주아 혁명기의 전휘처럼 새로운 가치를 발명하고 그것으로 이전의 가치를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은가??….p.144

….나는 1997년 이후의 세계가 바로 집단적 돌연변이가 본격화된 시기였음을 간파했다….한편에는 신상품과 신용카드, 인터넷과 공인인증서만 안겨주면 자신이 실제 삶의 주인인 양 별 전망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좀비화된 인간으로서 동물’이 있으며, 다른한편에는 물질적 풍요의 세례를 받으며 테크놀로지의 접촉면에서 신체적 감각의 재배치와 지적 역량의 확대를 꾀하는 ‘파워엘리트로서의 포스트 휴먼’이 있다….p.145

……현재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의 주거면적은 33평이면 족하다는 말도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시민 생활을 잘 영위하려면 교툥 규칙을 잘 지켜야 하듯이 인간의 주거 생활에서도 일가구일주택이라는 간단한 준칙이 잘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것만 잘 지켜진다면, 교툥의 공황같은, 아파트 파동은 물론, 시멘트 파동이나 건축자재의 파동도 한결없을 것이다. 다시말해서 집은 사람이 그 안에서 살기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돈을 버는 목적으로 잘못 사용된다면 그것은 집의 불행인 동시에 머지 않아 인간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더욱 사는데 알맞은 주거 이상으로 집이 덮어 놓고 광대해진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주거 문화의 타락인 동시에 사회문화 전체의 타락을 향하는 시초가 될 수 있는 것이다….p.261…김수근, [아파트와 주거문화의 타락], 조선일보, 1978년 7월 7일.

구성의 신선함에 놀라고,

내용의 방대함에 놀라고,

문장의 재미에 놀랐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를 재료로 해서,

엄청 맛있는 음식을 한상가득 차려놓은 책.

하지만, 그런 흥미 속에서

우리의 주거문화를 통해서

우리사회의 치부를 가득 담아내고 있다.

‘아파트’라는 집에 대해서

‘건축’으로밖에 접근할 수 밖에 없었던

그동안의 내 지식, 상상력, 표현력의 한계를 다시한번 느끼며….

박해천 교수님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

[인터페이스 연대기:인간, 디자인, 테크놀로지]